조선의 왕세자

조선의 왕세자는 어떻게 정해졌을까요.

왕위 계승의 기본 원칙은 왕비가 낳은 맏아들, 곧 적장자를 후계자로 삼는 것이었습니다.

세자로 책봉되기 전에는 ‘원자’라 불렸고, 정식 책봉 절차를 거치면 비로소 왕세자가 되었습니다.

하지만 실제 왕위 계승은 왕실과 정치 상황에 따라 이 원칙과 다르게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. 

조선에서는 세자를 세우는 일을 ‘나라의 근본, 국본을 정하는 일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.

왕세자 한 사람의 성장이 곧 나라의 다음 시대와 이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.

왕세자는 또 ‘동궁’이라 불렸습니다. 궁궐의 동쪽에 거처했기 때문입니다.

봄에 빗대어 ‘춘궁’이라고도 불렀습니다. 

해가 떠오르는 동쪽.
한 해를 다시 시작하는 봄.

왕세자는 곧 다가올 다음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.

이 전시의 주인공인 효명세자도 긴 준비의 시간을 거쳤습니다.

1817년, 효명세자는 성균관으로 나아가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는 입학례를 치렀습니다.

그리고 꼭 10년 뒤인 1827년에는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실제 정사를 맡기 시작했습니다.

스승 앞에 제자로 섰던 왕세자가, 마침내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나라의 일을 판단하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.

그 사이에 놓여 있던 10년.

그 시간을 채운 것이 바로, 왕이 되기 위한 배움이었습니다.